쿠팡 “지식재산권 위반, 반복된 정책 미이행”…홈쇼핑 “일방 통보, 소명 기회 없었다”
유통판도 흔드는 쿠팡의 정책 변화…홈쇼핑 업계 연쇄적 판매 중단 우려
서론: 쿠팡의 결정은 단순한 조치일까, 유통 지형의 변화일까?
최근 온라인 유통업계를 뜨겁게 달군 사건이 있다. 쿠팡이 국내 대표 홈쇼핑 3사, 현대홈쇼핑·롯데홈쇼핑·GS샵의 계정을 정지하고 판매를 중단한 것이다. e커머스 시장에서 독보적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는 쿠팡의 이런 결단은 단순한 플랫폼 정책 집행이 아니라, 유통 전반에 걸친 구조적 변화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번 조치는 수천억 원대의 거래 규모를 지닌 주요 파트너사들과의 거래를 일방적으로 끊어낸 것이기에 그 파급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상품 선택의 폭이 줄어들고, 홈쇼핑 업계는 주요 온라인 판매 창구를 잃는 셈이다. 과연 쿠팡은 왜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일까? 그리고 이 변화는 앞으로 어떤 결과를 낳게 될까?
쿠팡의 판매 중단 조치, 무엇이 문제였나
쿠팡 측은 이번 조치가 ‘예고된 대응’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핵심은 자사 정책 위반이다. 쿠팡은 상품 등록 기준에 있어 허위·과장 정보, 이미지 도용, 지식재산권 침해 가능성이 있는 상품에 대해 강력히 제재하고 있다. 특히 쿠팡은 “기존의 중소 셀러들과 동일한 기준을 대형 파트너에게도 적용한 것일 뿐”이라며, 형평성 확보 차원의 결정이라고 강조한다.쿠팡 관계자는 “홈쇼핑 업체들에게 지난해부터 여러 차례 사전 경고를 했고, 시정 요청과 유예 기간도 부여했다”며 “그럼에도 위반 사례가 지속되어 더 이상 묵과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쿠팡의 내부 정책상 지식재산권 침해 소지가 있는 상품을 반복적으로 등록하거나 허위 이미지를 사용하는 경우, 계정 정지와 같은 강력한 조치를 취하도록 되어 있다.
이처럼 쿠팡은 플랫폼의 질적 신뢰 확보를 위해 자사의 규정을 엄격히 적용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으며, 이는 ‘공정한 경쟁 환경 조성’이라는 대의명분을 기반으로 한다. 하지만 그 과정이 ‘일방적’이었다는 비판도 동시에 받고 있다.
홈쇼핑 업계의 반발…“소통 단절, 일방적 조치”
홈쇼핑 업계는 이번 쿠팡의 조치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하고 있다. 가장 큰 불만은 ‘소명 기회조차 없었다’는 점이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기존에 홈쇼핑사와 쿠팡 간 소통을 담당하던 부서가 이달 초 바뀌면서 소통 단절 현상이 발생했고, 이로 인해 기존과 같은 조율 절차 없이 곧바로 계정 정지가 단행됐다는 주장이다.특히 NS홈쇼핑의 사례가 대조적이다. NS홈쇼핑은 유사한 문제로 계정이 일시 정지됐지만, 충분한 소명 과정을 거친 끝에 판매가 재개됐다. 이와 비교해 이번 현대·롯데·GS홈쇼핑은 관련 소명 기회를 받지 못한 채 거래가 끊겼다는 것이 홈쇼핑 업계의 입장이다.
한 관계자는 “쿠팡이 정책을 강화하는 것은 이해하나, 최소한의 협의나 설명 절차 없이 이런 중요한 결정을 일방적으로 통보한 것은 문제”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대형 유통 파트너들조차 이런 대우를 받는다면, 향후 중소 판매자들 역시 동일한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경고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쿠팡과 홈쇼핑, 이제는 ‘윈윈’ 아닌 ‘경쟁’ 관계?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쿠팡과 홈쇼핑은 상호 보완적인 관계로 여겨졌다. 홈쇼핑사들은 TV를 통한 판매 외에도 쿠팡이라는 거대한 오픈마켓 채널을 통해 온라인 소비자와의 접점을 확대할 수 있었고, 쿠팡은 다양한 상품 구성(SKU)을 확보함으로써 플랫폼 내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었다.하지만 최근 들어 상황은 달라졌다. 쿠팡이 직매입 전략을 강화하며 자체 유통망을 통한 제품 공급에 집중하고 있고, 셀러 중심의 중개 모델에서는 점점 거리를 두고 있는 모습이다. 이는 곧, 대형 셀러 입장에서는 플랫폼에서 밀려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일부 홈쇼핑 관계자들은 이를 “토사구팽”이라며 표현하고 있다. “한때는 대형 셀러 입점 유치에 적극적이던 쿠팡이 이제는 독자 생존을 선택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쿠팡 입장에서는 자체 브랜드, 직매입 상품을 앞세워 ‘믿고 살 수 있는 쇼핑몰’로의 전환을 꾀하고 있는 반면, 홈쇼핑은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는 형국이다.
유통 시장에 미치는 파장…“거래 중단 검토 움직임도”
현재 일부 홈쇼핑사는 쿠팡과의 거래 자체를 중단하는 방안을 내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중 구성 상품이 많은 홈쇼핑 특성상, 쿠팡의 요구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예컨대 하나의 세트 상품에 다수의 브랜드와 구성이 포함된 경우, 이를 쿠팡의 단일 상품 등록 기준에 맞추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이런 불협화음이 계속된다면, 유통업계 전반에 상당한 여파가 미칠 수 있다. 쿠팡은 이미 수백만 명의 충성 고객을 확보한 플랫폼이고, 홈쇼핑 역시 연간 수천억 원대의 거래를 의존하고 있는 판매 창구를 잃게 되는 셈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은 단순한 판매 중단을 넘어, e커머스 플랫폼의 운영 철학과 유통 생태계 간의 충돌로 봐야 한다”며 “온라인 중심의 유통 재편 흐름 속에서 누가 주도권을 쥘 것인가를 가르는 시험대가 될 수 있다”고 분석한다.
결론: 유통 주도권을 둘러싼 쿠팡과 홈쇼핑의 신경전, 그 끝은?
쿠팡과 홈쇼핑 간의 갈등은 단순한 거래 정지 이상의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전통 유통 채널과 급성장한 e커머스 플랫폼 사이에서 벌어지는 주도권 경쟁이자, 소비자 신뢰와 플랫폼 정체성을 놓고 벌이는 철학적 충돌이다.양측 모두 한 치의 물러섬 없이 자신들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가운데, 오는 10일 예정된 한국온라인쇼핑협회 주관 간담회가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만큼, 원만한 조율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유통 업계 전반에 걸쳐 ‘플랫폼 리스크’라는 새로운 화두가 부상할 수 있다.